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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부산 좌천동 역사 골목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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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초량, 좌천동 일대는 조선과 근대 역사, 6.25 피란민들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장소입니다. 30분 정도면 볼 수 있는 곳이라 근처에 방문했다면 한 번 둘러보시는 거 추천드려요.

*좌천우물→좌천동굴→정공단→정오연 생가터→부산진 일신 여학교→기미 독립 선언문→안용복 기념관

 

<좌천 우물>

좌천 우물은 봉생 병원 뒷편에서 죄천동으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좌천 큰 새미라고 불리기도 하고 부산에 있는 재래식 우물 중에 비교적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된 우물이라고 합니다. 약 150년 전에 만들어진 우물이라고 추정한다고 합니다.

<좌천동굴>

좌천역 1번 출구에서 나온 후 우회전해서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면 좌천동굴이 있습니다.자동차로 갈 경우는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고 주변 공영 주차장을 이용합니다. 화~토요일 10시~16시까지 운영하고 일, 월요일은 휴무, 무료입장입니다.

좌천동굴은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한국인들을 강제 노역으로 만든 인공 동굴이에요. 원래 내부를 볼 수 있지만 방문한 날이 정비 중이라 들어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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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단>

임진왜란 때 첫 접전지였던 부산포 전투에서 전사한 정발 장군과 당시 목숨을 바친 분들의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송공단, 윤공단과 함께 부산의 3대 공단에 속하고 500여 년 전 임진왜란이라는 우리나라 역사에 큰 사건이 있었던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길은 곳입니다. 왜란 이후 제향을 해오다가 1895년 첨철제사제도 폐지 되면서 계속 제사를 지내왔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 해산을 당했지만 1945년 광복이 되면서 다시 제사를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해요.

<정오연 열사 생가터>

정공단 맞은편으로 작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정오연 생가터입니다. 이름이 생소한데 그는 17세 나이에 항일 투쟁으로 모진 고문으로 희생된 열사입니다. 어린 나이에 순직해 남은 가족이 없어 열사의 14남매 중 남동생의 가족분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요. 아주 작은 곳이지만 둘러보면 저절로 숙연해집니다.

<부산진 일신 여학교>

정공단을 끼고 오르막길을 바라보면 빨간 벽돌 건물이 보이는데 부산진 일신 여학교입니다. 일신 여학교는 부산 최초 만세 운동이 일어난 상징적인 장소이자 부산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이며 건축학적 가치가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00년이 넘은 건물이지만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고 비례와 균형미를 잘 보여주는 건물로 부산 기념물 55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1919년 3.1일 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부산에도 이어집니다. 당시 부산 상고와 동래 고등학교, 일신 여학교에서 함께 하기로 약속했지만 3월 1일 당일 일신 여학교 학생 11명과 2명의 교사만 만세를 외쳤다고 하네요. 학생과 교사의 용기에 많은 사람들이 만세 현장에 합류했고 일제의 총칼에 다치고 학생들은 체포되어 부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고 합니다. 일신 여학교는 1925년 동래로 이전해 동래 일신 여학교가 되었고 현재는 동래 여자 고등학교입니다.

 

<기미 독립 선언문>

일신 여학교에서 오르막길로 바라보면 벽면에 독립 선언문이 새겨져 있어요. 독립 선언문과 동구 출신 독립 유공자와 국채 보상운동, 3.1 운동 33인 민족 대표들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오르막길이라 잠시 힘들기는 하지만 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되네요.

<안용복 기념관>

오르막길 끝에서 오른편으로 가면 안용복 기념관이 있습니다. 안용복은 동구 좌천동 출신으로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임을 분명하게 확답을 받은 장군입니다. 기념관에서 매축지에 있는 안용복 생가터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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