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천 마을이나 초량 이바구 길, 호천 마을 등 오래된 마을을 리모델링해 여행객들을 불러들이는 관광지로 유명합니다. 닥밭골도 그런 마을 중 하나로 감천 마을보다는 규모도 작고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알록달록한 벽화가 예쁜 마을이에요. 대신동의 산복도로에 위치해 있지만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으로 가더라도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어서 계절마다 들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자차로 이동하는 분들은 닥밭골 입구에 주차 빌딩을 이용하시고 40~1시간 정도면 충분히 둘러보는 것 같아요.
닥밭골은 닥나무가 많아 유래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닥밭골 1953 골목 공원이라 불리기도 해요. 1953년 부산역 대화재로 순식에 보금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살았습니다. 그 때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화재가 난 년도를 넣어 1953 골목 공원이라 불려진다고 합니다.
닥밭골은 평소에 알려진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외국인이 더 많아 놀랐어요.
벽화는 큼직큼직한 스케일의 벽화들이 많고 공병을 재활용한 유리 벽화부터 닥나무를 형상화한 벽화 등 그 소재가 다양하게 활용한 것 같아요. 옛날 닥나무가 많은 지역이라 닥종이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닥종이를 만드는 과정을 소개한 벽화도 눈에 띄네요.
그리고 닥밭골의 하이라이트는 희망 계단입니다. 192개의 계단에는 계단 전체가 벽화로 장식되어 있고 중심에는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어요. 이 곳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제작되었는데 부산 최초의 모노레일이라고 합니다. 방문했을 때에는 벚꽃이 한창이어서 더 예뻤던 것 같아요. 모노 레일의 관리하시는 어르신에게 여쭤보니 계단 끝에는 민주 공원으로 가는 길로 이어져 있다고 하네요.
<닥밭골 이름의 유래>
닥밭골의 유래는 고려가 건국할 때 지어진 이름입니다. 원래 지명은 고분도리었습니다.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가 창건되면서 투항한 사람들과 분리하기 위해 닥밭골을 유배지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보내진 사람들은 고리짝을 만드는 노역을 한 데서 고분도리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고리짝은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납작한 상자를 말합니다.
닥밭골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왕실 호위 무사였던 춘보라는 인물 때문입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은 관직을 내려놓고 지리산으로 가던 중 이 마을 울창한 닥나무 숲에 반해 며칠 머물렸습니다. 최치원은 춘보에게 이 마을의 닥나무에 대해 이야기했고 닥나무가 한지로 사용하기 좋다고 일러줍니다.
춘보는 고리짝 대신 닥나무로 한지를 만들자고 주민들을 설득합니다. 한지를 생산하자 가난에 허덕이던 마을주민들은 부자가 되었고 마을 이름도 고분도리에서 닥밭골로 바뀌었습니다. 닥밭골이라는 지명은 춘보의 선견지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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